말 너머의 말
제 아들 은국이는 나이도 어린 게 벌써 네 개 나라 말을 합니다. 한국 떠나온 지 팔 년 됐는데 어휘나 어법이 제법 정확합니다. 일본에서는 하도 대학생 형들과 논 탓인지 일본아이처럼 일본말을 했습니다. 2001년 추수감사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 제가 여기(일본) 와서 처음에 말이 안 돼 힘들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일본말이 좀 되거든요. 나중에 제가 천국 가서 일본말을 가르쳐드릴 게요."하고 감사편지를 읽어 온 교우들이 배꼽을 잡으셨습니다. 이제는 점점 은국이 영어를 못 알아듣겠습니다. 제게 맞아가며 ABC를 배우던 녀석이......
미국 와 학교 간 지 사흘 만의 일입니다.
"엄마, 나 오늘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내주셨는데 다 맞았어요."
"니가 학교 간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다 맞아? 다 맞았는지는 어떻게 알아?"
녀석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요, 선생님이 시험지를 주면서 '은국이는 그냥 찍어라' 그러셨는데, 제가 아빠랑 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지혜가 모자라면 지혜를 주신다고 했으니까 지혜를 주세요', 이렇게요. 그리고 찍었는데 다 맞은 거예요."
아내는 걸렸다는 듯 몰아붙였습니다.
"이 녀석이, 지 아비를 닮아서 뻥은! 야 이 녀석아. 세상에 어떤 선생님이 학생한테 시험문제를 찍으라고 하셔? 설사 그렇게 하셨더라도 학교 간 지 사흘밖에 안 된 니가 어떻게 알아들어?"
제 아들의 항변을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이놈이 벌써 5년도 넘게 전에 통달한 깊은 소통의 세계를 영적으로 적용해보십시오.
"엄마,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들어요. 그냥, 척, 하고 아는 거지! 엄마가 그런 식이니까 일본말도 영어도 안 되는 거예요!"
주님, 척, 하고 알아듣는 귀를 주세요. 말씀 아니 하셔도 척, 알아듣게 해주세요. 속삭이는 미풍, 초롱한 별빛, 넘실대는 파도, 어린 가지의 새순, 지저귀는 새소리, 빗방울 넓은 나뭇잎 때리는 소리....... 예, 여기서도 주님의 음성을, 주님의 높으신 뜻을 척, 하고 알아듣고 살게 해주세요. 주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롬 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