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매국노
소신학교 친구 중에 2학년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과 신학교를 마치고 중국 선교사 생활을 한 후 지금은 미쉬건 주 플린트라는 도시에서 한국사람, 미국사람, 아시아사람 가릴 것 없이 사람들과 지역을 섬기는 착한 목사가 됐습니다. 이민 후 한 때 연락이 끊어졌다가 10년 만에 미국에서 해후한 후 꾸준히 연락이 오가는 좋은 친구입니다. 한 번은 제가 켄터키 루이빌로 이 친구를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마침 친구 안 사람은 한국 친정을 방문중이어서, 우리는 부부가 사용하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소신학교 시절, 춥고 배고프고 항상 두리번거리기만 했던 당시의 이야기이며, 친구가 미국에 와서 어떤 고생을 했는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루이빌의 밤하늘은 높고 아득했습니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잊지 못할 것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고 마지막 면접 같은 것을 보던 일에 얽힌 것입니다.
“성웅아, 나 매국노다.”
“........”
“내가 말이야 시민권 시험을 보는데 마지막으로 거기 면접관이 내게 묻더라고. ‘마틴 핸, 당신은 미국과 한국이 만약에 전쟁을 한다면 말이오, 어느 쪽에 총구를 겨누겠소?”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냐?”제가 궁금해져서 물었습니다.
“야, 그거 치사하더라. 속마음 같아서는 ‘이거 보시오. 내가 미국 시민권에 눈이 어두워 조국에 총부리를 겨눌 사람으로 보이오? 시민권, 포기하겠소!’하고 말하고 싶은데, 입에서는 ‘물론 한국을 향해서지요!’하고 대답했어. 지금도 좀 찝찝하다. 에이, 난 시민권에 겨레도 져버린 매국노다, 매국노!”
이 날 이후 저희 두 사람은 함께 며칠 자동차 여행을 했는데, 그 때마다 저는, ‘어이, 매국노!’하고 이 친구 심기를 건드리곤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좋은 친구였기에 망정이지 실제 적이거나 잠재적인 적, 혹은 가상의 적 정도만 됐더라도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다가 우리가 어쩌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그럴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래서 미국과 한국이 전쟁을 하면 한국으로 총부리를 돌려야 하는 신분의 사람들인지도 모른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마귀새끼들이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우리는 마귀의 맹독에 중독 돼서, 하느니 거짓말이요 가느니 죽음의 종착역인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마귀적 본성을 지닌 우리를 하나님이 크고 편 팔로 빼내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 시민권자들입니다.
한 때 속했던 나라, 나를 키워주고 나를 만들어준 나라를 향해서 총부리를 겨누고 총질을 한다는 게 때로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죄에 맞선다는 거, 이게 바로 전쟁인데 이 전쟁에서 왠지 죄, 마귀, 세상, 율법을 향해 총을 쏴야 한다는 게 낯섭니다. 익숙하지 않고, 껄끄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쏴야 합니다. 얄팍한 감상을 버려야 합니다. ‘구원’은 ‘거룩’을 동반하는데, 거룩을 위한 전쟁은 성도에게 생존이 걸린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네게서 내 나라 백성들의 습관이 발견된다. 내 나라 백성의 냄새가 나. 그런데도 어떻게 내게 총부리를 겨누냐, 이 매국노야!’하고 마귀는 속삭일 겁니다. 귀를 막고 방아쇠를 당겨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골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