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한 절 묵상

환청

sherwood 2008. 12. 5. 05:15

환청

 

미국 아들네 집에 놀러 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흘도 안 돼서 짐을 꾸리시더니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십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저희가 뭐 불편하게 해드렸나요?’

‘아니다. 불편하게 하긴....... 뭐, 그냥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런다.’

‘아버지, 저희가 서운하게 해드린 거 있으면 야단치시고 서울 가신다고 하지 마세요. 어떻게 오셨는데 사흘도 안 돼서 가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서운하게 한 거 없다. 근데 그게 그냥 가봐야 할 것 같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며느리 아들 사이에 약간은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갑니다. 아들내외는 어쩔 줄 모릅니다. 이민 와서 천신만고 끝에 집 사고 조그만 비즈니스도 하나 열었습니다. 미국 와 자리 잡느라 그간 밀린 효도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부모님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좋다는 곳에도 모시고 가고 멀리 나가 광활한 자연도 보여드리고 맛 난 음식도 매일 대접했지요. 도대체 왜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실까? 도무지 서운하게 해드린 일이 없는데.......

아들내외의 눈치를 살피시던 할머니가 어렵사리 말문을 여셨습니다.

 

‘우리는 늬들이 미국 와서 고생 끝에 자리 잡았다고 하기에 왔다. 그런데 너희들이 우리 없는 데서 하는 얘길 들으니 만날 빚 갚으러 다녀야 한다고 말하더구나. 어느 부모가 자식들이 뼛골 빠지게 빚 갚으러 다닌다는데 빚 낸 돈으로 관광 다니고 좋은 거 먹으러 다니겠냐? 우린 그렇게 못 한다. 우리가 너희를 못 도와주는 것만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어서 비행기 자리 잡아라. 갈란다.’

 

아들내외는 아연실색할 밖에요. 두 사람은 서로 물었습니다. ‘당신, 빚 갚으러 간다고 한 적 있어?’ ‘당신이야 말로 그런 말 한 적 있어요?’ 아무리 아무리 생각하고 짜내도 빚 갚으러 간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며느리가 박장대소 하며 웃습니다. 아들은 지금 부모님이 서운하셔서 가시겠다고 하는데 방정맞게 왜 웃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픽업하러 간다고 얘기하는 걸 들으신 모양이에요. 피컵(pick up)하러 간다, 빚 갚으러 간다, 비슷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픽업하러 간다는 말을 부지기수로 했는지라 아들도 배꼽이 빠져라 웃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빚 갚으러 간다는 게 아니구요 픽업하러 간다, 차 태우러 간다, 어디 물건 가지러 간다는 얘기예요. 안심하세요. 저희 빚 같은 거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도 귀 트인 만큼 들리겠지요? 장가가고 싶은 사람에게 장가가란 말씀, 돈 벌고 싶은 사람에겐 돈 준다는 말씀,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에겐 건강을 준다는 말씀....... 영혼의 귀에 낀 귀지부터 파내고 들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11.5

'느슨한 한 절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곱을 치러온 자객; 그의 하나님 야훼  (0) 2008.12.15
해병대와 물고기  (0) 2008.12.05
매국노  (0) 2008.12.05
말 너머의 말  (0) 2008.11.27
입양  (0) 2008.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