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명언묵상

무신론자의 믿음

sherwood 2010. 3. 3. 02:12

예수 그리스도를 있다면, 나는 그분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못한 존재일 것이다. 내게 인간을 초월하는 구세주가 필요한 까닭은 죄와 무기력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대니얼 웹스터


If I might comprehend Jesus Christ, I could not believe on Him.  He would be no greater than myself.  Such is my consciousness of sin and inability that I must have a superhuman Saviour.  ~Daniel Webster


한 반기독교 단체에서 서울 시내 버스에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여 기독교를 반대하는 (하려는) 광고를 실었더군요. 저 광고는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하나는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을뿐더러 (제대로 하면, “나는 자기의 피조물에게 상을 주고 또 징벌한다는 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가 돼야 합니다. ‘상을 주고’를 왜 뺐는지 모르겠네요.), 저 말이 왜 반 기독교 혹은 무신론의 전거가 되는지도 이해가 안 됩니다. 아인슈타인이 저 말로써 드러내려 한 것은 신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신의 어떤 면모(자기가 지어놓은 피조물에게 상을 주거나 벌을 내려야 할 만큼 뭔가가 캥기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보도방식에는 이미 믿은 저조차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숱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학적인 방증, 역사적 정확성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신뢰’의 인격적인 관계에 돌입했다는 뜻입니다.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속뜻 깊은 사귐이 필요하고, 기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지한 동행이 필요한 일입니다. 때로는 경험칙과 확률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것이 사실은 경험에 대한 순 모순이지요) 모험하며 비약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믿습니다. 솔직히 도망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웹스터의 말처럼 죄와 무기력의 문제 앞에서 다시 고개를 떨구고 받아달라고 빌 수밖에 없어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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