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철-종사품

미국의 근본주의

sherwood 2010. 3. 19. 04:18

A Research Paper on

Christian Fundamentalism in America

 

 

 

 

 

 

 

 

 

 

 

 

 

 

 

 

 

 

By

Seong Woong Kim

ID: G10174396

 

 

 

 

 

 

 

 

 

MODERN CHURCH HISTORY (CH 504)

Dr. Katherine H. Lee Ahn

 

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Theology

Winter 2010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Christian Fundamentalism in America)

 

근본주의는 한마디로 성경 무오성,’ ‘동정녀 탄생,’ ‘대속적인 속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과 신속한 재림 등을 기독교 신앙의 근본 진리로 천명하고, 이를 수호하려고 일종의 신앙 운동이다. James Barr 저서 Fundamentalism 에서 근본주의자들의 특성으로 (1) 성경 무오성에 대한 아주 강한 강조, (2) 근대신학과 방법론, 성경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 결과와 함축적 의미에 대한 격심한 적대감, (3) 그들의 종교적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진정한 신자일 없다는 배타적인 확신을 꼽았다.[1]텍스트 상자: 목차
1. 운동의 기원과 배경
2. 4단계에 걸친 전개
3. 핵심적인 신학
4. 미국적인 현상
5. 비판과 평가
   참고문헌  운동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미국과 영국의 보수적인 목회자들, 평신도 그리고 학자들이 일으킨 운동이지만, 논문에서는 미국의 근본주의만을 다룰 것이다. 이유는 운동이 유독 미국에서 사회적, 정치적, 지적 그리고 국가적 현상으로 뚜렷하게 전개, 정착됨으로써,[2] 많은 학자들에 의해  북미의 개신교 특정 그룹을 가리키는 (Gilford, 255)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1. 운동의 기원과 배경

운동은 여러 단계를 거쳐 전개됐지만, 기독교 신앙이 19세기 후반에 대두한 생물학, 지질학, 심리학 과학 그리고 특별히 성서비평학에 의해서 공격받아 위험해지고 있다는 공통 인식에 뿌리를 두고 뻗어나갔다 (Feldmeth, 64). Gilford 근본주의가 특정한 상황의 산물이라 분석하면서, 19세기 말의 미국의 동북부의 도시들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회문화적 변화에 주목한다. 그것은 1 세계대전과 후유증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정치적 격동(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미국을 국제연맹 국가로 가입시키려는 윌슨의 노력), 도시화, 산업화, 이민 ( 개신교 국가들로부터의) 등이다. 이런 격동은 그간 당연시 해왔던 미국의 개신교 근간을 이루는 정신에 위협을 주는 것으로 해석됐 (Gilford, 255).

한편 신학적으로는 독일의 고등비평학, 다윈의 진화론이 시기 미국에 당도하는 점도 간과할 없다. Marsden 근본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개신교가 사회개혁의 소망, 과학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낙관적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사회적 기득권을 상실하면서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분리주의적이고 폐쇄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고 지적한다 (Marsden, 80). 또한 부흥주의의 새로운 확산, 비교단적 기관들의 설립과 활동, 성경학교, 성경과 예언 컨퍼런스 (The Prophecy and Bible Conference), 새로운 정기간행물들 그리고 출판사들의 설립 등도 근본주의의 태동을 부추기는 요인들로 작용한다. 여기에John Nelson Darby 제창한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주의 중산층 가운데 인기를 끌던 예언 컨퍼런스와Scofield Reference Bible (1909) 통해 확산된 것도 현상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Gilford, 256).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사회문화적, 종교적 배경에서, 과학의 발견과 신앙을 조화시키고, 기독교 신앙을 근대성의 입장에서 보려는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을 가차없이 근대주의자로 몰기 시작한다.

 

2. 4단계에 걸친 전개

근본주의 운동은 역사적으로 아래와 같이 4단계로 거쳐 전개된다고 있다.[3]

         i.            태동과 교리적 주장 형성 (19세기 - 1920년대 초반): 시기 북미주의 주류 교단들은 변화하는 사회문화에 편승하는 입장에서 진화론, 성경비평 아울러 사회복음을 수용하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 보수적인 개신교도들은 이러한 수용을 근대주의 혹은 자유주의로 비난하면서, 근대 성경비평의 전제적인 부정 (예언, 기적 그리고 초자연성) 맹렬히 거부했다.[4] 근본주의는 이런 갈등의 시기를 거쳐 1 세계대전의 발발 무렵에는 하나의 뚜렷한 운동으로서 독자적인 형태 갖추게 것으로 본다. 아울러 근본주의는 시기에 중요한 자기규정에 돌입한다. 첫째, 근본주의자들은1909 창립한 세계기독교근본주의자연합 통해 The Fundamentals이라는 출간물을 시리즈로 내놓는다. 이어 1920년에는 당시 침례교에서 발행하던 Watchman-Examiner 편집자 Curtis Lee Laws 근본주의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기본 진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른다. 시기 근본주의 수호자들은 교회 밖과 교단 내에서 단체들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ii.            일시적 쇠퇴 (1920 후반- 40년대 초반): 20세기 20 정도는 비단 개신교만이 아니라 미국 문화 전체가 복고하는 경향을 띠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근본주의자들이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실패했다. 한편 1925 일어난 원숭이 재판 (monkey trial)[5]으로 문화적으로는 크게 실패하고 대중으로부터 퇴각했다. 시기 운동은 분리주의적인 양상(그들의 입장에서 배교한 교회들에서의 이탈과 새로운 교단 창설, 자신들만이 종교적/도덕적으로 미국의 개신교를 책임지는 세력임을 천명 [McIntire, 474]) 띠고, 이후에는 종교, 교육 그리고 선교 기관들을 통해 운동을 전개하는 모습으로 나가게 된다.

      iii.            운동의 분열 (1940 년대 초반-70년대) 1950대에 이르러 그간의 교단적 연합 강조에도 불구하고 진영 분열이 일어났다. Billy Graham 으로 대표되는 진영에서는 문화적인 변용을, Bob Jones 대표되는 다른 진영에서는 문화적 분리를 선택했다. 전자는 근본주의자라는 말을 버리고 복음주의라는 말로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려고 시도했다.[6] 1950-60년대를 지나면서 분리가 더욱 심화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아래서 ACCC (American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1941) 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1942) 세워지기도 한다.[7]

      iv.            재등장 (1970년대 후반 -80년대). 시기에는 기독교 기관들이 활발하게 생기고 숫자가 획기적으로 늘었다. 시민운동, 여성운동, 월남전, 워터데이트사건, 공립학교 기도 반대 판결 (대법원, 1963), 낙태 합헌 (1973) 사회적인 변화의 분위기에 맞서 공화당내 정치적인 해결사들의 후원 아래Christian Voice, The Religious Roundtable, The American Coalition for Traditional Values 같은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Jerry Farwell 세운 Moral Majority (1979) 이런 근본주의적 대변기관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8]  근본주의의 재등장에는 1960-7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의 남부에 일어난 변화를 무시할 없다. 차별반대 정책, 도시화, 산업화, 북부로부터의 인구유입으로 인한 문화적 단일성 붕괴에 직면하여. 남부의 보수적인 기독교가 남부 근본주의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자들은 1970년대 중반에 남부 루터란교회를 장악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 중반에는 남부 침례교회도 영향권에 두게 됐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근본주의자들은 정치적인 연계에 상당한 관심을 두나 정작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들은 여러 형태의 연계 (낙태반대: 몰몬교와 가톨릭, 이스라엘 지지: 오순절) 꾀하나 오히려 많은 지지자를 잃었다. Pat Robertson 대통령 출마 (1988) 종교적 우익의 결집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성서적 기독교와 한때 미국에서 우세했던 전통적 도덕관의 수호자라고 변함없이 믿고 있다 (McIntire, 475).

 

3. 핵심적인 신학

근본주의는 종종 종교, 문화, 정치의 배경에서 나온 하나의 기독교 형태로서 광범위하고 원래의 문맥으로부터 분리된 신학”(Gilford, 257)이라는 혹평을 받는다. Barr 그의 저서에서 근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전제들을 인상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1) 교회 안에 존재하는 신자와 명목적인 신자의 구별, (2) 바른 교리에 대한 집착 수준의 강조, (3) 보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현상으로서의 , 동시에 음주 끽연, 성적 부정 특정 일탈 부각, (4) 형벌적이면서 대속적인 속죄론 (penal substitutionary atonement),  (5) 기본적으로 정서에 호소하는 중생 체험, (6) 성례전에 대한 상대적으로 약한 강조, 이에 비해 높은 (개인) 기도, 복음전도, 해외선교에의 강조가 그것이다 (Barr, 11-35).

그러나 근본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신학적 전제는 성경의 축자 영감설이다. 무엇보다 근본주의자들에게 성경의 권위는 결정적인 주제이며, 성경 무오성 근대성과 맞서 싸우는 강력한 구호였다. 그들은 고등비평을 성경을 모든 진리의 근원인 신적 계시를 훼손시키거나 나아가서는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것이기에 적극 반대했고, 성경이 신앙과 교리에서뿐 아니라 역사와 과학의 영역에서도 무오하다고 주장했다 (Anderson, 231). Barr 근본주의자들의 성경교리를 다음과 같은 말로 명쾌하게 요약하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에게서 성경은 믿음의 진리성을 입증하는 원천 이상이다……성경은 사실 종교 자체다. 기독교의 중심이……근본주의에서 성경은 로마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에 비견된다. 성경은 구원에 관하여 인간적인 형태의 가시적 상징이다 (Barr, 36).

 

Barr 지적에서 엿볼 있듯이 근본주의는 성경의 무오성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해석 형태를 일절 거부하는 나머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최고의 통제적인 요소가 되는일종의 역행을 만들어 내고, 나아가서 본문의 주석적인 의미 분석” (Barr, 38) 배제한 상태에서 느슨한 성구인용을 일삼는다. [9] 이러한 경향은 역설적으로 성경을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보도 형식으로 파악하는 결과를 낳고, 이로써 성경 무오에 집착하지 않은 종교개혁 정신으로부터도 멀어지게 한다. Gilford 근본주의자들의 성경 무오성에 대한 강조를 근대성 없이는 이해할 없는 현상으로 규정하면서, “어딘가 새롭고, 성경비평에 의해 야기된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동”(Gilford, 257.)으로 보인다고 평가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근본주의는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기를 아예 목욕시키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4. 미국적인 현상

신학도 신앙도 역사적/문화적 진공상태에서 형성되지는 않는다.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근본주의는 유독 미국에서 꽃피웠으며, 이런 사회문화 혹은 지성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교회사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도록 하는가? 먼저 Marsden(199- 227) 근본주의를 아래 가지 현상으로 분석하는데, 결국 그의 분석은 운동의 독특하게 미국적 특성 명백하게 드러내준다.  

 

         i.            사회적 현상. 근본주의는 기반상실, 소외의식을 경험한 소수의 이민 공동체가 응집력을 부여하기 위해 개인적인 투철한 신앙과 핵심 신조를 강조한 현상이다. 근본주의와 이민은 모종의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1 세계대전 이후 점증하는 문화적인 위기감이 운동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요인이다(201).

        ii.            정치적 현상. 전천년주의 득세로 인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가 취해졌다. 다른 세계의 세속화하는 신앙과, 미국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야 한다는 확신의 사이의 요동이다. 사탄이 미국을 공격하고 있으므로, 신학과 교회의 영역에서 반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러한 시급성이 학교로까지 파급되었다.

      iii.            지성적 현상. 무지가 운동의 특징 하나이다……일반적으로 편견 에서 나온 반지성주의 편집증 스타일 (212)이다.

      iv.            미국적인 현상. 미국 외의 어느 나라에서도 근대성에 대한 특정한 개신교적 반응이 문화 안에서 이토록 유별나고 광범위한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221).

 

그렇다면 무엇이 미국의 상황에서 군사적인 근본주의를 저토록 광범위한 범위로 부추기게 했는가? 첫째, 미국은 자신만의 전통을 추구할 있을 만큼 인종적/교단적 그리고 지역적인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223). 둘째, 부흥주의의 역동성 관한 이견 없는 합의이다. 미국의 부흥주의는 기존 전통과 제도에 의해 상당히 저항을 받았고(223), 여기에 성서주의(Biblicism) 단순주의(primitivism) 가세하였다. 셋째, 미국은 유럽국가들과 달리 19세기 이전의 사상적 영향을 받지 않음으로써 근대주의 경향을 있었다 (227).

근본주의가 미국이라는 역사, 사회, 지성적 풍토 속에서 유독 특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어떤 현대적인 적용점을 발견해야 하는가? 19세기 중후반 이후 미국에서 강력하게 일어난 선교운동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선교사 파송국가가 되었다. 만약 시기 파송된 많은 선교사들이 근본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면, 그들이 피선교지에 소개하고 이식한 기독교 역시 근본주의적일 것이다 (가장 좋은 예가 한국이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성숙과 신학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교회사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상당한 비판적 작업을 요구하는 과제가 아닐 없다. 아니, 1940년대에 일어난 한국 장로교 분열 (예수교장로회, 기독교장로회), 1970년대의 급진적인 상황화 작업 (민중신학) 등은 한국에 소개된 근본주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거친 반동 작용이었다고도 있을 것이다.

                                                                                                                                                                                                                                                                                                                                                                                                                                                                                                                                                                                                                                                                                                                                                                                                                                                                                                                                                                                                                                                                                                                                                                                                                                                                                                                                                                                                                                                                                                                                                                                                                                                                                                                                                                                                                                                                                                                                                                                                                                                                                                                                                                                                                                             5. 비판과 평가

교회사를 공부함으로써 얻는 유익은 헤아릴 없을 정도로 많지만, 역사를 성경적 진리 인간 삶의 정황’ (Sitz im Leben) 상호작용이라는 축에서 균형 있게 살펴야 한다는 교훈만큼 것은 없는 같다. 진리와 상황, 가지 어느 하나를 과장되게 강조하거나 반대로 무시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교리적/실천적 극단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근본주의는 사회적 격동 속에서 성경적 진리(교리) 지나치게 대결적 구조 가운데서 강조한 탓에, 당시 역사적 정황과 인간 삶의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복음으로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결여하고, 사회적인 변증의 책임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못한 일종의 극단적/폐쇄적인 신앙운동이라고 있다. 이러한 극단성/폐쇄성 그리고 대결의식은 모든 내부지향적인 신앙 운동사에서 있듯이 첫째로는, 성경 자체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운동 참여자들의 시대에 대한 인상과 해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고, 둘째로는, 교회사의 흐름과 발전에 주류적인 기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가 교회사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통찰도 있다. 첫째 기독교 신앙의 대상과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명확한 제시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그것들을 시대 그리고 문화와 관련하여 신선하게 재해석하지 못했지만, 기독교가 어떤 개념적인 전제 위에 있는지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성서 무오설은 신학적으로 여러 측면의 논의가 뒤따라야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근거와 자료를 보여주는 유일한 원천이 됨을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있다. 성서비평학의 과도한 영향 아래서 신중한 연구와 성서에 대한 존경심 없이 성서를 무조건 비역사적이고 몰상식한 책으로 무작정 몰아붙이는 천박하고 철없는 자유주의자들은 오히려 근본주의에서 배워야 같다.

둘째, 교회사를 통해서 시대와 문화에 대한 균형 잃은 고려는 자칫 종교 혼합주의(syncretism) 양산하는 , 이러한 혼미한 절충과 타협 역시 시대적인 대안이 되지는 못함을 발견한다. 사실 19세기 신학적 자유주의는 이상 신앙과 신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인간이 자기완성의 절정에 이를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뽐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21세기인 오늘날 누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주의를 신봉하는가? 실천적인 의미에서, 자유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 회의주의와 불가지론- 종교와 영성에 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순환은, 차라리 근본주의의 과격한 자기확신보다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셋째, 근본주의는 1960년대 이후 (복음주의라는) 나름대로의 노선수정을 통해 운동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시대와 문화 인식이 취약하고 사회적인 변증이 허술하다) 조금씩이나마 극복해오고 있고. 이것을 혁명 격심한 정치적 격변을 겪지 않은 미국이 종교적인 분야에서 표현하는 일종의 온건한 진보로 있다면, 근본주의는 19-20세기의 어떤 신앙운동에 비해서도 생명력과 자기 수정능력을 지닌 건전한 운동이라고 있다.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교의 선생들 아래서 신학과 신앙을 형성한 필자 역시 근본주의 신학에 빚이 크다. 소논문을 통하여 근본주의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어떻게 신학-문화적 민감성 (thologico-cultural awareness) 더함으로써, 조금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신학과 신앙을 세워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것은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영예였다.

 

Bibliography

Individual Books

E. R. Sandeen, The Roots of Fundamentalism, University of Chicago, (Chicago, 1970)

George M. Marsden, Fundamentalism and American Culture,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80)

James Barr, Fundamentalism , SCM Press, (London, 1997)

Nathan P. Feldmeth, Pocket Dictionary of Church History, IVP (Downers Grove, 2008)

Dictionaries

Paul Gilford, Fundamentalism, in The Oxford Companion to Christian Thought, Ed. Adrian Hastings, Oxford Univ. Press, 2000, pp. 255-257

Ray S. Anderson, Fundamentalism, in The Blackwell Encyclopedia of Modern Christian Thought, Ed. Alister E. McGrath, Blackwell (Oxford, 1993)

Fundamentalism in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3rd edition), Ed. E. A. Livingstone, Oxford Univ. Press (Oxford, 1997), p. 647



[1] James Barr, Fundamentalism, SCM (London, 1977), p.1

[2] George M. Marsden 그의 저서 Fundamentalism and American Culture (1980)에서 근본주의가 사회적, 정치적, 지적 현상이며 동시에미국적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3] 이 시대 구분은 C. T. McIntire, Fundamentalism, in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 Theology (2nd edition), Ed. Walter A. Elwell, Baker (Grand Rapids, 2001), pp. 472-75을 따랐지만, 시대적 특성에 대한 명명은 필자의 것이다.

[4]이러한 거부감을 신학적으로 가장 표현한 학자로는 프린스턴 학파를 대표하는Charles A. A. Hodge Benjamin Warfield 꼽을 있을 것이다.

[5]당시 공화당 지도자였던 William Jennings Bryan Dayton (TN) 교사 J. T. Scopes 생물학적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법을 위반했다는 기소를 받자 이를 극렬 지지했다. 재판과 핍박으로 인해 근본주의는 대중으로 비웃음을 받았다. “Fundamentalism” in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3rd edition), Ed. E. A. Livingstone, Oxford Univ. Press (Oxford, 1997), p. 647

[6]그러나 Gilford북미에서 복음주의와 근본주의는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문제라고 파악하고 있다 (Gifford, 256).

[7] EDT, p. 474

[8]. 1985 타임 9월호는 Jerry Farwell 표지 인물로 다뤘다. 단체는 국내적으로는 낙태, 동성연애자들의 권리, 평등권 수정, 복지,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 뉴에이지, 대법원의 세속주의, 매체, 교육 시스템 등을 문제 삼았고, 국제적으로는 공산주의 반대, 이스라엘 지원을 외쳤다. 이들은 특히 기독교 라디오, 방송 통해 부동의 영향력을 발휘하였는데, National Religious Broadcasters라는 단체에는 대통령 (Ronald Reagan) 나와 연설할 정도였다 (Gilford, 256).

[9] Barr는 근본주의자들의 습관적인 성구인용을 일종의 제의적인 절차로 본다 (Barr, 37). 한편 Gilford역시 근본주의자들의 문맥과 동떨어진 성구 사용을 지적한다 (Gilford,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