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말하는 금식 성경에서 말하는 금식은 사실 음식물을 조금 자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음식뿐 아니라 물조차도 일체 금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먼저 히브리어로 숨(금식하다), 그리고 솜(금식)이라는 말이 구약에서 많이 쓰이고, ‘인나 나프쉬오’(영혼을 괴롭게 하다)는 말도 금식에
해당하는 말로 쓰입니다. 금식이, 결국은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거네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을 괴롭게 해서, 정말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그분 앞에 토해내게
하는 과정! 구약에서는 정례 금식이 있었습니다.
대속죄일의 그것입니다(레 16.29 참조).
출애굽 이후에는 이것 말고도 4번의 정례금식이 지켜졌습니다(슥 8.19). 에스더
9.31에 나오는 금식은 아마도 다섯 번째 정례금식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도 금식했습니다. 슬플 때(삼상
31.13), 참회할 때(왕상 21.27),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때(시 69.10) 금식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 구할 때(출 34.28)도 했고,
누가 대신해서 금식을 해주기도 했네요(에10.6). 선지자들은 “금식하면 다 들어주신대!”하는 미신적인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했습니다(사 58.5-12; 렘
14.11-12). 신약에서는 네스튜오(동사), 네스테이아 그리고 네스티스(명사)가 금식하다, 금식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정례금식은
대속죄일 뿐이었던 것 같지만,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고요(눅 18.12- 죽을 맛이었겠네요~), 경건한 유대인들
역시 자주 금식했습니다(누가복음에 나오는 과부 안나). 예수님의 경우를 좀 보지요.
1)
시험 당하실 때 외에는 금식 안 하심 (이때도 자발해서 금식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지 예비지로 삼은 곳에 합당한 음식이 없었다는 뜻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2)
금식해야 하면 사람 보고 하지 말고 하나님 보고 할 것이라 하심 3)
제자들에게도 나중에 정말 할 때가 있을 테니 그때 하라고 하심 초대교회는요, 1)
선교사 뽑을 때, 2)
장로 뽑을 때 금식했습니다. 3)
바울은 두 번 금식했는데, 한 번(고후
6.5)을 제외하고는 금식이 아니라 굶식(먹을 게 없었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가 금식을 대대적으로 권장하고, 마치 금식 자체에 대단한 능력 있는 양 선전한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학자들은 마 17.21; 막
9.29; 행 10.30, 고전 7.5를 후대에
끼어든 구절들로 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초대교회가 슬슬
‘금식을 경건의 중요한 도구로 생각하게 될 만한 정황들이 펼쳐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식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면,
영혼이 축 늘어진 쇠불알마냥 된 저 같은 종자들에게는 따끔한 금식이 필수요청 된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끼니만
되면 밥 찾는 저 같은 모지리는 센 척 할 필요조차 없이, 약한 게 이미 입증된 것이므로, 굳이 금식까지 해가면서 약한 걸 인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먹건 굶건, 중요한 것은
우리 위해서 일해주시는 하나님의 대자대비 아닐까요? (이 글은 NBD [3rd Edition]의 FASTING 항목 [H. A.
G. Belben]을 참고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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