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읽는 서평

마음의 진보

sherwood 2008. 11. 5. 23:14

마음의 진보, 카렌 암스트롱, 교양인

 

R 집사님께,

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습니다. 비 구경이 힘든 이곳에 내리는 비는 참 묘한 정취를 자아냅니다. 일전 이메일로 보내주신 좋은 글 모음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을 소개할까 합니다.

 

처음 이 책을 잡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저자가 환속 수녀님이시고, 두 번째는 현대 종교학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자라는 광고 문안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저자의 ‘종교학’에 대해서는 격렬히 반론하고 싶습니다만, 수녀원 경험에서 얻은 감동이 제법 큽니다.

 

저자는 17살 나이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리고자 집을 떠났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면 다 수녀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몇 단계의 확인과 확증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수녀가 됩니다. 제가 집사님과 나누고 싶은 것은, 수녀원에서 혹독한 자기수련을 한다, 그게 마치 사관학교 같아서 끝까지 참는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서 가장 감명 받은 대목은, 치열한 훈련과 자기부인의 몸부림을 통해서 자아와 욕망을 누르고, 순종과 순응의 길을 걷는 일에 상상 못할 수준의 성공을 거둔 어떤 신앙인들에게서 너무나 놀랍게도 ‘열매 없는’ 메마른 삶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지요.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한 알의 밀알로 남아 있겠지만, 그 밀이 죽으면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이제 와서 보니 나는 정말로 죽은 것 같았다. 그런데 더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 구역으로 들어갔다가 소망했던 대로 환골탈태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 두 세상의 안 좋은 것들만 들고 나온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저 같은 사람이 하기에 턱없는 말인 줄 압니다만, 이 글을 읽으면서 영혼의 고난도 특수전 훈련을 마친 장교처럼 말하고 행동하시는 훈련전문가, 사역달인들을 뵈면 왠지 가슴이 조금은 답답해지면서, ‘닮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도망치고 싶다’고 느끼게 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자아의 죽음까지는 잘 인도하는데, 이후의 대책(풍성한 열매의 삶)이 막막했던 것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죽어라,’ ‘끊어라’고는 잘 하는데, ‘살아라,’ ‘누려라’를 말해주지 못한다면 이건 또 하나의 밀폐 수녀원 아닐까요. ‘교회에서 살아라,’ ‘봉사를 누려라’는 예수님이 가져다주려고 했던 삶의 풍성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궁상’인 것 같아 썩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네요.

 

그리고 이런 저자의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닌 문제의 핵심은 결국 자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수도 생활에서는 바로 이 자아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마주 보아야 한다. 나를 정면으로 응사해야 하는 자각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깥 세상에 훨씬 더 많은 법이다.......수녀원에서는 이런 걸 하나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에 대해 쓰라린 자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호라,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가 “우리 믿음의 개척자이시며 그것의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히12.2)하고 말했군, 하고 저는 위의 인용글과 성경을 얼른 연결시켰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들볶고 채찍을 휘둘러 댄다고 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자아)를 더 크게 만들 뿐이다, 변화는 믿음을 선사하시고 그 믿음이 유지되도록 끝까지 우리에게 성실하실 예수에게 붙어 있음에서 오는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을 정반대편에서 경험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종교학자들처럼 저자도 다원주의적인 주장을 많이 하고, 정통적이지 않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많이 늘어놓긴 합니다만, 이런 번뜩임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중간에 놓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자기부인과 이를 통해 이르게 되는 ‘풍성한’ 삶에 함께 초대받은 저로서 집사님을 뵐 때, 또 대화를 나눌 때 잔잔한 기쁨을 경험합니다. 큰 키에 어울리게 신앙의 길도 성큼성큼 걸어가시는 집사님께로부터 신선한 도전과 자극을 받습니다. 아무쪼록 ‘훈련’을 통과하되 ‘풍성한 삶’에 도달치 못하는, 내가 나의 멱살을 잡고 뒤흔드는 우스꽝을 자기부인이라고 우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리며 편지를 마칩니다. 샬롬 아레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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